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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왜 귤나무를 일부러 죽였을까?

지금식량 미래식량 2022. 4. 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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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에 귤 많이 드셨나요?

얼마 전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났어요.

제주도가 국내산 귤껍질을 산업화할 방안을 찾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귤을 사면 보통 알맹이를 먹고 껍질은 버리잖아요.

 

그런데 이 귤껍질의 흰 막에는 비타민P가 풍부해서 모세혈관을 튼튼히 하고 감기, 소화기 증상, 복부나 수족 냉증 등 다양한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해요.

거의 천연 구급약인데요. 천연 비타민이기도 해요!과육보다 껍질에 비타민C가 4배 이상 많다죠?

이 좋은 걸 우리는 '껍질'이라고 하면서 버려왔네요.

영양소 면에서 알맹이와 껍질이 뒤바뀐 것 같은 생각마저 들어요.

 

이 정도면 귤을 까지 말고 통째로 먹어야 제대로 먹은 거라고 할 수 있겠어요.

 

 

지금 제주도가 이렇게 귤피를 산업화 하려는 이유 중 하나가 한약재료로써의 귤피를 대부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국내에 양질의 귤이 생산되니, 멀리서 수입할 것없이 국내산을 한약재료로 활용하면 정말 좋겠어요.

 

귤 하니까 얼마 전에 읽은 [역사의 쓸모]에서 나온 대동법이 생각이 납니다.


옛날 조선시대에는 지역특산물을 나라에 바치는 공납이라는 제도가 있었어요.

이게 백성들에게는 굉장히 큰 부담이었대요.

 

지금처럼 물류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이니 섬에서 육지로 귤을 가져오는 일이 어디 쉬웠겠어요.

 

당시에는 그래서 왕이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하사품으로 귤 몇 알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귤을 가져와 가족들과 한쪽씩 나눠먹을 만큼 귀한 것이었죠.

 

당시 제주도 백성들은 귤을 공납으로 바쳐야 했어요.

 

귤이 열리는 시기가 오면 관리들이 마을에 찾아왔어요. 그리곤 나무에 이제 막 달려서 아직 익지도 않은 귤 갯수를 일일이 세었고, 나중에 낼 할당량을 알려줬어요.

 

그런데 농사라는 게 열매가 끝까지 잘 익을 수도 있지만 중간에 썩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죠.

그런데 그런 사정을 봐주지 않았습니다.

썩은 열매를 받아주지도 않으면서 말이죠.

 

공납이 융통성없이 이뤄지다 보니까 귤나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나무를 죽이는 농민도 많았다고 해요.

이 와중에 수수료를 받고 공납을 대신 내주는 대행업자가 성행합니다.

 

이 사람들은 공납을 걷는 사또와 결탁했고, 사또는 무조건 이 업자들에게서만 특산물을 받았어요.

 

업자들은 믿는 구석이 생기니 터무니없이 돈을 높게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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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백성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고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생긴 게 대동법이에요.

쌀로 대신 하는 거지요. 공납은 누구나 다 내야했다면 대동법은 땅을 가진 사람만 세금을 내면 됐어요. 그러니 토지가 없거나 적은 백성에게는 감세였죠.

 

죽을 때까지 대동법의 확산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 조선시대 실학자 김육 이었습니다.

 

백성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학자가 아니었나 싶네요.

 

지금은 흔하고 겨울이면 박스로 사다놓고 먹는 귤이 조선시대에는 백성들이 잘 먹어보지도 못하고 세금으로 내는 데만도 버거웠던 과일이었다니, 그 옛날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금처럼 원하면 언제든 귤을 먹을 수 있는 요즘이 참 감사하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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